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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개관

출애굽 연대 (1) 출애굽 초기 연대설의 논거들

by 말씀공방 2025.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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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은 출애굽의 초기 연대설(주전 1446년)과 후기 연대설(1260년경)의 주장 가운데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각 편의 고고학적 주장에 대해서는 모두 상대편에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런 반응들의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출애굽 초기 연대설의 논거들

이 논거들은 출애굽의 "초기 연대설"(주전 약 1446년)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된다.

1. 왕상 6:1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라고 말한다.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솔로몬의 재위 제4년의 연대는 주전 967/966년이며 그보다 480년 전은 1446년일 것이다. 이는 (모세 시대)의 고라부터(다윗 시대의) 헤만까지 열여덟 세대를 언급하고 있는 대상 6:33~37에 의해 뒷받침되며 이에 따르면 모세부터 솔로몬까지는 열아홉 세대가 되어야 한다. 480년을 열아홉 세대로 나누면 세대 당 평균 25.3년이 산출되며 이는 왕상 6:1의 언급이 실제로 480년임을 확인시켜주는 합리적인 숫자다. 

 

2. 삿 11:26에서 입다가 암몬 왕에게 보내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이미 "삼백 년"동안 살았다고 말한다. 이 메시지의 시기는 대략 주전 1100년대로 추정되며 그럴 경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시기는 대략 1400년대가 되는데 이는 1446년의 출애굽과 조화를 이룬다.

 

3. 여리고, 아이, 하솔에서 나온 고고학적 자료는 주전 15세기 말에 파괴된 증거를 보여 준다고 주장되어 왔는데 이는 1446년의 출애굽 및 1406년의 가나안 정복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13세기에는 (출애굽 후기 연대설에서 요구되는 바와 같은) 여리고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없다.

 

4. 아마르나 서신은 주전 15세기 말의 가나안 왕들이 바로에게 가나안 땅을 "장악"하고 있던 '아피루'에 맞서 도움을 간청하는 편지를 썼음을 보여준다. 이는 이스라엘이 정복을 시작한 시기를 1406년으로 추정하는 것과 조화를 이룬다.

 

5. "라암셋"의 건축을 언급하는 출 1:11의 시기를 ("후기 연대설"에서 주장하는 대로) 주전 1270년경으로 추정해선 안 된다. 이스라엘의 놀라운 인구 증가(출 1:22~22)와 모세의 출생(출 2:2)은 모두 출 1:11 이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올 때 "팔십 세"였다면 (출 7:7) 출애굽은 최소한 라암셋이 건축된 지 80년 뒤, 즉 주전 1190년이 될 것이며 이는 두 학설 중 어느 쪽을 따르든 너무 늦다. 실제로 메르네프타 석비(글귀가 새겨진 묘비와 비슷한 석판)는 주전 1211~1209년에 가나안에서 있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6. 출애굽 초기 연대설에 따르면 사사 시대는 약 350년을 차지한다. 이는 사사기 자체와 대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사사기에서 각 사사들이 다스린 기간을 단순히 합산하면 400년이 약간 넘는데 사사들이 다스린 기간이 일부 중첩된다면 전체 기간을 350년으로 줄일 수 있지만 출애굽 후기 연대설이 주장이 요구하는 대로 170년까지 합리적으로 줄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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